이혼전문변호사
작성자행복인
- 등록일 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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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녹주는 딸을 나라 제일 명창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열두 살 때부터 소리를 시작했다. 명창 박기홍에게 배울 때는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 24시간 중 20시간 이상 소리를 하느라 목에서 피가 났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소녀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는 무대는 많지 않았다.박녹주는 1948년 임춘앵·김소희 등 당대 여성 명창들과 함께 최초의 여성국극단인 ‘여성국악동호회’를 창설한다. 그는 훗날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서울에는 국극사, 조선창극단 등의 예술단체가 있었지만 모든 운영이 남성 위주였고, 여성들은 꽤 푸대접받는 편이었다. 이에 항시 불만을 품고 있다가 내가 주종이 돼서 순전한 여성 단체를 만든 것이다.”여성국극에서는 여성 소리꾼이 남성 배역까지 소화했고, 기존의 창극과 달리 소리뿐 아니라 춤과 연기 등의 비중이 컸다. 이후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되던 판소리계 판도가 바뀌었다. 호동왕자나 이몽룡 역을 맡은 남역 배우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