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불평등의 갈림길에서
작성자행복인
- 등록일 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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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행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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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직조공들은 주 4일만 일해도 여유로운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기술 발전이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준 것이다. 하지만 이후 자동 베틀이 본격 도입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직조공들은 기계에 밀려났고, 다른 일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들의 실질임금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수십만명이 절대빈곤에 시달리게 됐다.
현대 기술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다. 단순 반복적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 계층은 자동화로, 단순 사무직도 정보기술(IT)로 인해 19세기 직조공처럼 기계에 밀려났다. IT는 특히 스킬편향적으로 발전해 고숙련·고학력 노동자에게만 혜택을 가져다 주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이 이뤄지고 지식을 갖춰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었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과 임금 인상 효과를 보게 됐다. 결국 임금 격차가 증가하며 불평등 심화로 이어졌다.
AI 기술은 어떨까. AI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실뽑기(방적)’가 될 것인가, 아니면 기존 일자리를 파괴하는 ‘천짜기(직조)’가 될 것인가? 최근 연구에서 AI의 ‘역스킬편향(inverse skill-bias)’ 현상이 자주 보고되고 있다. AI가 오히려 저숙련·저학력 노동자에게 더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고객 지원 상담 업무에 생성형 AI를 활용한 효과를 분석한 결과, 경험이 적은 신입 직원들일수록 더 큰 도움을 받았다. 챗GPT를 활용한 글쓰기 실험에서도 글쓰기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더 큰 혜택을 봤다. AI가 일종의 지식 평준화 장치 역할을 한 셈이다. MIT의 경제학자 오터는 AI가 저숙련 노동자를 대체하기보다는 능력을 보완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며 “중산층을 재건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한다.
동시에 AI는 고숙련·고학력의 노동 대체 효과가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빅테크의 대규모 해고 소식은 AI가 코딩과 같은 인간의 고숙련 인지 업무를 대신해 예전만큼의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빌 게이츠는 “10년 내 AI가 의사나 교사 같은 전문직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호사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계약서 검토부터 협상까지 AI가 처리하는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해고된 고숙련 인력이 어디로 가느냐는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스타트업 생태계와 AI 도입이 필요한 산업 분야에서 이들을 흡수할 여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방적 기계가 대량의 실을 만들어내자 이를 천으로 짜는 직조 일자리가 늘어났듯이, AI라는 ‘실’이 풍부해지면서 이를 각 분야에 맞게 ‘짜는’ 작업이 필요해졌다. 의료용 AI, 교육용 AI 등 용도별 맞춤화와 전문화 작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런 ‘선순환’이 빠르게 일어날지, 얼마나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핵심은 AI 기술 발전의 방향이다. 노동 대체에 초점을 맞춘 기술이 주류가 될지, 아니면 인간의 능력을 보완하는 기술이 발달할지,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가 빠르게 생겨날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향이 기술의 특성보다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AI가 불평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정부는 공공 분야를 중심으로 노동 보완적 AI 기술 개발을 지원하거나 AI 활용과 도입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 등을 고민해볼 만하다. 200여년 전 영국 직조공들이 겪은 비극이 반복될지, 아니면 AI가 새로운 번영의 기회가 될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렸고, 아직 시간이 충분하다. 지금이야말로 공포를 넘어 희망의 미래를 설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