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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의 인권과 삶]평등의 토대 위에 세워질 민주주의

작성자행복인

  • 등록일 25-06-11
  • 조회0회
  • 이름행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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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선 결과를 보고 우울했다. 내란을 종식하기 위한 6개월간의 투쟁 뒤에 치러진 대선 결과로는 믿기 어려웠다.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에게 그만큼의 표가 나올 수 있는가? 이재명 후보는 50%를 넘지 못했고, 유일한 진보 후보였던 권영국은 1%도 넘지 못했다. 내란당인 국민의힘의 ‘압도적 패배’를 바랐던 나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민주주의 만들어야
그러다가 다시 생각했다. 시민의 평화적인 저항으로 친위쿠데타를 막아낸 일이 있었던가? 더욱이 최근에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극우 세력이 권력을 잡거나 집권을 넘볼 정도로 세졌다는 세상이다. 그런 세계적인 극우 득세의 시대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일이지 않은가. 극우 지도자가 혐오 세력과 손잡고 일으킨 내란이었는데, 시민들은 평화적인 저항으로, 민주적인 제도와 절차에 따라 내란의 강을 넘은 것이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지난 5월17일, 18일 광주를 다녀왔다. 국립5·18민주묘지와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들렀을 때,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보았다. 대부분은 청년이었다. 조를 짜서 묘지마다 돌면서 돌아가신 열사들에 대해 설명하고, 토론했다. 현재를 도왔던 과거, 산 자를 살린 죽은 자를 알기 위한 열성이 느껴졌다. 그런 열정은 금남로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광주행 대절버스를 타고 내려가면서 청년들에게 물었다. 왜 광주를 가려고 생각했냐는 물음에, 올해 광장에 나가면서 광주에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강의 소설 현장을 직접 가보고 싶었다고 했다. 민주주의 역사를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내 청년기를 돌아보게 했다.
새 정부가 탄생한 날은 내 동생이 “광주는 살아 있다!”고 외치면서 분신한 지 37년이 되는 날이었다. 내 동생은 37년 전인 1988년 6월4일 학교에서 분신했고, 이틀 뒤인 6월6일에 그만 저세상 사람이 됐다. 나와 동생, 우리 형제에게 광주 5·18은 존재의 근거였고, 삶의 이유였다. 동생이 광주를 외치면서 자신을 버렸던 이유를 수없이 생각했다. 5·18은 도청에서 오늘은 패배할 줄 알면서도 역사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던 이들의 항쟁정신 위에서 부활했다. 산 자들은 그들의 죽음에 빚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온몸을 바쳐서 싸웠다. 그렇게 지금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그 기억이 지난겨울 광장을 지킨 청년들에게 전승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더 나아가야 한다. 윤석열은 입만 열었다 하면 자유를 외쳤다. 그가 외친 자유가 실은 ‘직접적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이제는 모두가 안다. 이제는 독재자 윤석열 일당이 저지른 내란을 종식하면서 나아가 ‘구조적 폭력’ ‘문화적 폭력’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제와는 다른 차원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오늘은 평등 민주주의 고민해보자
멀리 동학에서부터 일제시대 독립운동, 그리고 독재에 맞섰던 민주화운동 시기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구상 속에는 분명히 자유와 함께 평등이 실현되는 나라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슬그머니 평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다중의 불평등이 당연한 제도처럼 여겨지는 나라에서 헌법 제11조 2항에서 금지한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가 들어서버렸다. 노동, 교육, 복지, 의료, 문화 등등 소수 기득권층 중심의 제도 위에 귀족처럼 대우받는 특권층이 생겨났다. 그런 특권층에게 시민들은 겨우 개돼지 정도로밖에 취급되지 않았다.
평등의 토대 위에 자유가 꽃피워야 민주주의가 튼튼해진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진보시킨 민주주의가 어느 순간 한꺼번에 두세 걸음 뒷걸음친 것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평등이 실현돼야 한다. 인권의 언어로 말하면,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이 유보 없이 실현돼야 한다.
오늘은 마침 6·10민주항쟁 38주년 기념일이다. 38년 전 그날은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화를 열었던 날로 기억된다면, 훗날 우리는 2025년 6월10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빛의 혁명’ 뒤에 올 민주주의는 각자도생의 비참한 현실이 아니라 광장의 존중과 돌봄, 연대가 생활현장에서도 실현되는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한 날로 기억될 수 있을까? 38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일에는 개돼지도 없고, 특수계급도 없는 평등의 민주주의를 적극 고민하면 좋겠다. 이제 누구에게나 민주주의는 소중한 제도이고 가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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